포근해진 날씨를 보니, 이제 정말 마라톤의 계절이 왔다는 게 실감 나네요. 달리기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시기죠?
마라톤 대회도 주말마다 열릴텐데요.
대회 전날 밤, 더 열심히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신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몇 번 대회를 나가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대회 전날의 역할은 '준비'가 아니라 '보존'이라는 것을. 그 차이를 몰랐던 첫 대회 때의 실수가,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테이퍼링: 컨디션 관리가 마지막 훈련입니다
마라톤을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테이퍼링(Tapering)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테이퍼링이란 대회를 앞두고 훈련량을 점진적으로 줄여 근육의 피로를 제거하고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대회 며칠 전부터는 달리는 양을 줄이고 몸이 회복에 집중하도록 하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이게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첫 대회 전날, 가볍게라도 뛰어줘야 몸이 풀린다고 생각해서 저녁에 30분을 달렸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출발선에 섰을 때 다리가 이미 반쯤 나간 느낌이었거든요.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날의 훈련은 기록 단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회 전날은 가볍게 15~20분 정도 조깅하며 몸의 감각만 깨우거나, 아예 완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정답에 가깝습니다.
근육을 과하게 늘리는 정적 스트레칭보다는 관절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동적 스트레칭 위주로 마무리하고,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올린 채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됩니다.
수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8시간 이상의 수면이 이상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솔직히 대회 전날 밤에 잘 자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긴장감 때문에 뒤척이는 건 거의 모든 러너가 경험하는 일입니다. 중요한 건, 잠이 안 온다고 폰을 붙들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억지로라도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신체적인 회복은 충분히 이루어집니다. 대회 당일에는 아드레날린이 알아서 부족한 잠을 어느 정도 메워주기도 합니다.
카보 로딩과 식단: 익숙한 음식이 최고입니다
카보 로딩(Carbo-Loading)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카보 로딩이란 대회 전날 탄수화물 섭취를 늘려 근육 속 글리코겐(glycogen) 저장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식이 전략입니다. 여기서 글리코겐이란 탄수화물이 근육과 간에 저장된 형태로, 장거리 달리기에서 주된 연료로 사용되는 에너지원입니다.
카보 로딩을 실천하는 방법을 두고 시각이 나뉘기도 합니다.
파스타나 빵을 거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방식이 위장에 적응되지 않은 분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평소 안 먹던 파스타를 전날 밤에 양껏 먹었더니 아침까지 속이 더부룩했습니다. 흰쌀밥과 김치찌개처럼 평소에 먹던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충분합니다.
기름진 음식이나 과도한 단백질, 매운 음식은 소화 속도가 느려 다음 날까지 위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생채소나 과일처럼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장 운동을 과하게 자극해서 달리는 도중 화장실을 급하게 찾게 되는 이른바 러너스 트롯(Runner's Trots) 현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너스 트롯이란 장거리 달리기 중 발생하는 복통이나 갑작스러운 배변 욕구를 뜻하는 말로, 경험해본 분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운 상황인지 아실 겁니다.
저녁 식사는 오후 6~7시 사이에 마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잠들기 전까지 충분히 소화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수분 섭취는 꾸준히 조금씩 하되, 잠들기 직전에 물을 많이 마시면 야간에 깨게 되어 수면의 질을 해칩니다.
준비물 세팅: 전날 밤에 끝내야 당일 멘탈이 살아납니다
대회 당일 아침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갑니다.
번호표는 어딨지, 에너지젤은 몇 개 챙겼지 하면서 허둥대기 시작하면 출발 전부터 멘탈이 흔들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귀찮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일 아침의 혼란이 레이스 초반 페이스 조절에도 영향을 줍니다.
전날 밤에 모든 준비물을 세팅하고 사진까지 찍어두는 루틴을 권장하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이게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 번 해보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사진으로 남겨놓는 습관이 있어 꼭 전날에 레디샷을 찍어 놓습니다.

체크해야 할 준비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배번호표: 전날 밤 미리 싱글렛이나 상의 앞면에 옷핀으로 고정해 둡니다. 기록 측정용 칩이 신발 태그 방식이라면 러닝화 끈에도 미리 단단히 묶어둡니다.
- 신발과 양말: 마라톤의 철칙은 '대회 당일 새것을 쓰지 않는다'입니다. 최소 50km 이상 달려본 익숙한 러닝화와 평소 신던 러닝 전용 양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 에너지젤: 목표 거리에 따라 달라지지만, 하프는 최소 2개, 풀 마라톤은 4~5개가 기준입니다. 저는 10km 지점마다 하나씩 섭취하는 방식을 씁니다.
- 바셀린 또는 니플패치: 허벅지 안쪽, 겨드랑이, 남성의 경우 유두 부위의 쓸림을 방지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30km 이후에는 이게 완주를 가르는 디테일이 됩니다.
- 여분의 양말과 간식: 도착 후 젖은 양말을 갈아 신을 여분 양말과, 당일 아침 식사용으로 소화가 잘되는 에너지바 하나 정도를 챙겨두면 좋습니다.
당일 아침 식사와 관련해서도 의견이 나뉩니다.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10km 이상 코스에서는 간단한 에너지바 하나 정도라도 먹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제가 직접 비교해봤을 때,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달린 날은 후반부에 체력이 눈에 띄게 빨리 방전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상 후 최소 2~3시간의 여유를 두고 가볍게 먹는 것이 안전합니다.
당일 스케줄과 마인드셋: 달리기 전에 머릿속부터 정리합니다
대회 시작 시간으로부터 최소 3시간 전에는 기상하는 것이 일반적인 권장 사항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뇌와 근육이 운동 모드로 전환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화장실 문제를 미리 해결할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한데, 이게 생각보다 레이스 집중도에 큰 영향을 줍니다.
대회장에는 출발 1시간 전까지 도착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품 보관소 위치, 화장실 동선, 자신이 속한 출발 그룹의 위치를 미리 파악해 두면 당황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첫 대회 때 가장 많이 당황했던 부분입니다. 대회장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사람이 많아서, 미리 파악해두지 않으면 출발 전부터 체력을 낭비하게 됩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반은 동의하고 반은 유보적입니다. 코스도를 미리 살펴보고 언덕 구간이나 급수대 위치를 머릿속으로 그려두는 건 분명 도움이 됩니다. 다만 전날 밤에 페이스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며 목표 기록을 계산하는 건, 경기력 향상보다 수면 방해에 더 가깝습니다.
제가 아직도 그러는데, 그건 그냥 설레는 겁니다.
스포츠 과학 분야에서도 대회 전날 충분한 수면과 탄수화물 확보가 경기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어 있습니다(출처: 대한스포츠의학회). 또한 마라톤과 같은 지구력 운동에서 글리코겐 고갈이 퍼포먼스 저하의 주요 원인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출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결국 전날 밤의 역할은 딱 하나입니다. 몸이 가장 편한 상태로 내일 출발선에 서도록 만드는 것. 더 하지도 말고, 덜 하지도 말고, 오늘까지 달려온 것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준비입니다.
2026.04.18 - [분류 전체보기] - 무릎 보호대 언제 착용해야 할까? 착용 타이밍부터 근력 강화, 테이핑까지 정리
무릎 보호대 언제 착용해야 할까? 착용 타이밍부터 근력 강화, 테이핑까지 정리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무릎보호대 착용이나 테이필하지 않은 러너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저도 그 풍경을 보면서 "달릴 때는 당연히 차야 하는 거구나"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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